주변관광지

※ 강화성산예수마을 주변에 위치한 유적지를 알려드립니다.

강화산성

강화산성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일원

사적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1232년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착공하였는데, 공사가 완공되기 전에 강화도로 천도하여 2년 후인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영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의 성은 내성(內城) ·중성 ·외성이 있었는데, 내성은 현재의 강화성으로 둘레가 3,874자(1,174m), 중성은 둘레가 5,381m로 1250년에 축성하였고, 외성은 1233년에 축조를 시작하였다. 이 성들은 모두 토성인데, 중성의 위치는 선원면(仙源面)의 토성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외성은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길이가 3만 7070자(1만 1232m)였다. 그러나 1270년 개경(開京)으로 천도한 후 몽골의 요청으로 헐어버렸다.

조선 전기에 규모를 축소하여 다시 축성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파괴되고, 1677년 강화유수 허질(許秩)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의 내성 규모로 돌성[石城]을 쌓았다. 1709년 강화유수 박권(朴權)이 다시 개축하였고, 조선 후기에 보수가 계속되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소가 있고, 암문(暗門)이 4개소, 수문(水門)이 2개소 있었다. 성문의 문루는 남쪽에 안파루(晏波樓), 서쪽에 첨화루(瞻華樓), 북쪽에 진송루(鎭松樓), 동쪽에 망한루(望漢樓)가 있었다. 첨화루는 1711년 강화유수 민진원(閔鎭遠)이 건립하였고, 안파루는 쓰러진 것을 1973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며, 진송루는 원래 문루가 없던 것을 1783년 성을 개축할 때 건립하였다. 수문은 갑곶진(甲串鎭)으로 옮겨져 있으며, 동문쪽은 강화 시가지가 되어 성도 문루도 없어졌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강화성공회

강화성공회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江華邑) 관청리(官廳里)있는 한국 최초의 성당

1981년 7월 1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변경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이며, 성공회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1910년대까지 강화 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다.

고려궁지

고려궁지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官廳里)에 있는 고려의 궁궐터.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를 강화로 옮긴 후 1270년(원종 11) 화의를 맺고 개성(開城)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터이다. 이 자리에는 당시의 건물 기단(基壇)과 3단으로 된 돌계단이 남아 있었으나 후에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 건물이 세워졌으며, 1976년에는 3문의 출입문을 세우고, 돌담을 돌려 국방유적으로 정화하였다.

고려 궁정의 건물로는 본궁인 연경궁(延慶宮), 그 북동쪽 언덕에 강안전(康安殿), 소동문을 들어가 성마루터 북쪽에 경령궁(景靈宮), 옥림리 자문고개 서쪽에 건덕전(乾德殿), 그 동쪽에 장녕전(長寧殿), 뒤쪽에 만녕전(萬寧殿), 그리고 북창문 밖의 대묘동에 태묘전각(太廟殿閣)으로 대관전(大觀殿)과 신격전(神格殿)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없어졌고, 이 밖에 이궁(離宮)과 가궐(假闕)도 곳곳에 세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방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다.

초지진

초지진 사진

위치 인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초지리에 해안선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진.

1971년에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233m2이다.
1656년(효종 7) 강화유수(江華留守) 홍중보(洪重普)가 처음 설치하였다. 66년(현종 7) 병마만호(兵馬萬戶)를 두었다가 1763년(영조 39)에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兵馬僉節別使) 1명,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墩軍) 18명, 목자(牧子) 210명, 진선(鎭船)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소장과 싸웠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 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년(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돈에는 3곳의 포좌(砲座)가 있고 총좌(銃座)가 100여 곳 있다. 성은 높이 4m 정도에 장축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이다. 돈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강화고인돌

강화고인돌 사진

위치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6번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사적 제 137호로 지정되었다.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상고사와 고대사의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2000.11.29 호주 케인즈 제 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참성단

참성단 사진

위치 인천 강화군 화도면 상리방

참성단은 사적 제 136호로써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라고 전한다. 제단은 돌로 하부는 둥글게, 그위에 네모난 단을 쌓아 올렸다. 둥근 단의 지름은 8.7m이며, 네모난 단은 6.6m의 정방형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축하였고, 숙종 26년(1700)에도 보수하였다. 지금은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단군의 제사를 지내며, 한편 전국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가 이 참성단에서 7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대회장으로 봉송, 점화되고 있다. 특히 1988 세계장애자 올림픽대회의 성화도 이곳에서 채화되어 대회 기간을 밝힌 바 있다.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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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정비하였다.

덕진진

덕진진 사진

위치 인천 강화군 불은면 신현리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으로서 원래 수영에 예속된 첨사의 진(鎭) 이었으며 1677년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배 2척이 배치되었다. 1679년 축조된 용두, 덕진돈대 포좌 15문이 설치된 강화 제 1의 포대인 남장포대와 대포 10문이 설치된 덕 진포대가 이 진에 소속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에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승리를 거두었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미국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당시 미군의 전사 속에 남북전쟁 때에도 이와 같이 짧은 시간 에 맹렬한 포격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미양요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 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면서 남장포대에는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를 제작하여 설치 하였다.

※ 강화성산예수마을 주변에 위치한 관광지를 알려드립니다.

마니산

마니산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도 화도면일원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69.4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사적 130)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남서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淨水寺法堂:보물 161)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인천기념물 29) 1기(基)가 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강화역사관

강화역사관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16

1984년에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 사업으로 착공되어 1988년에 준공하고 9월 14일에 개관하였다. 역사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총건평 267평 건물로, 홍이포 1문과 소포 2문 등 대포 3문을 비롯하여 철재 종류가 38종, 석재 종류가 69종, 목재와 지기 종류가 49종, 기타 문구 종류와 의상 등 총 169점의 유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1998년 12월 현재 이곳을 찾은 관광객의 월평균 인원은 1만 6134명인데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어서 시설이 더 확충되면 관광객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모도

석모도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三山面)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 석모도는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일몰이 아름답고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경치가 좋은곳으로 영화 시월애(時越愛)와 취화선(醉畵仙)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차로 1시간 반에서 2시간이면 강화 본섬의 서쪽 끝 외포리 포구에 닿는다. 여기서 맞은편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까지 1.5km바닷길을 카페리선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카페리 운항은 여러척이 수시(평일 30분,휴일 및 성수기 약15분간격)로 왕복한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건널 때 뱃전으로 날아 드는 수백마리의 갈매기떼의 장관은 빼놓을 수 없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길들여진 이곳의 갈매기는 스스로 먹이 사냥을 하지않는 게으름뱅이다. 모 방송국의 작가는 이곳의 갈매기를 거지갈매기라고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석모도는 아직도 자연의 고운 모습 을 간직하고 있다. 강화땅에는 온통 사적지와 전적지 명소들이 즐비하지만 석모도는 빼어난 도서경관과 해상풍광, 아름다운 산들이 어우러져 한 번에 자연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석모도의 서쪽으로는 민머루해수욕장과 광활한 갯벌이 있어 휴양지와 생태교육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해수욕장의 물이 빠져 나가면 갯벌에는 수많은 바다생물이 있어서 조개와 게등을 잡을 수 있고 부드러운 갯벌로 머드팩을 즐길 수 있다.특히 민머루해수욕장의 일몰은 서해의 3대 일몰조망지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옆에는 천일염전이 있어 소금 생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해수욕장 양옆으로는 어류정항과 장구너머포구가 있어 어촌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석모도는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의 3개의 산이 있어 삼산면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보문사가 위치한다.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개 관음도량으로 관음보살의 터전이다. 또한 보문사는 전등사, 정수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로 신라 선덕여왕4년(635)에 금강산에서 내려온 회정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새벽 동틀 무렵에 듣는 절 앞바다의 파도소리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상은 예로부터 강화 8경에 드는 명승으로 꼽혔다.

석포리와 해수욕장, 보문사를 잇는(8km)섬내 버스는 배 시각에 맞춰 다니고 있어 굳이 승용차가 없더라도 가는 길이 수월하다. 해수욕장과 보문사까지는 차로 15-20분 정도 걸린다.

교동도

교동도 사진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옛이름은 대운도, 고림, 달을신이라 불렀다.
고려시대 삼별초의 대몽항쟁을 이끈 김통정이 이곳 출신이며, 유적지로는 국내 최초로 공자의 화상을 봉안한 교동향교(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와 화개산성,화개산 봉수대가 있다.
민속놀이로 고구농악놀이가 전해오고 마을에서는 3년마다 3월초에 오래된 물푸레 나무에서 부군당제를 모신다.
고구리 저수지는 낚시터로 활용되며 특산물로는 화문석, 완초제품, 새우젓이 유명하다. 조선시대 연산군이 이 섬에 유배되어 전염병으로 죽기도 하였다.
북한을 넓은 시야로 관망할 수 있다.

동막해변

동막해변 사진

위치 인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우리나라 각 시대의 역사가 곳곳에 새겨져 있어 '국토박물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라고 불리는 강화도에서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산은 마니산 (469.4m)을 비롯해 하점 면과 양사면의 경계에 솟은 봉천산, 하점면과 내가면의 경계에 솟은 낙조봉, 강화도의 부속섬인 석모도 상봉산과 해명산 등이다. 바닷가 명소로는 강화도 남쪽의 화도면 장화리에서부터 동막리에 이르는 해안 도로가 으뜸으로 손꼽을 만하다. 도로변이나 인근 음식점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서도 편안 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분오리 돈대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석모도에서는 민머루해변이나 장구너머포구가 일몰 감상의 포인트이다.

은암 자연사박물관

은암 자연사박물관 사진

강화 은암 자연사박물관(관장 이종옥)이 2001년 7월 1일부터 개관함에 따라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개관되는 자연사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희귀 패류, 곤충(나비)류, 조류, 동물류, 화석류 등과 살아있는 파충류 및 애완동물들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게 된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제1전시장에는 바다와 육지 등 자연환경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조류, 동물류, 악어 등이 살아가는 모습을 디오라마 기법을 이용하여 생동감 있게 설치하였고 제2전시장에는 아마존강 유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나비 등 여러 종류의 곤충과 바다에 서식하였던 말미잘 등을 전시하였다.

제3전시장에는 아름다운 색채를 가진 국화조개를 비롯한 모양이 다양한 여러종류의 패류를 전시하였고 제4전시장에는 공룡알 화석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보석의 원료가 되는 수정체의 원석 등이 전시 되어 있다.
전시장 밖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집에는 열대지방의 대자연속에서 살고 있는 살아있는 이구아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파충류와 애완용 조류 및 동물들을 전시하여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강화농경문화관

강화농경문화관 사진

강화군 농경문화관은 과거,현재,미래의 농경모습을 생동감있게 구현하여 방문객에게 차별화된 볼거리를 제공하며 특히 대도시 주민과 학생들의 농촌체험학습을 적극 연결하므로써 농업인들의 실질적 소득증대 효과를 거양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지난해 6월 12일 개관한 이후 금년 3월말 현재 방문객 수가 50,000여명을 기록하였다.
지금까지 방문객 대상으로 시대를 넘나드는 농경과 농기자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또한 자라나는 세대에게 농업의 공익적 기능 등 소중한 가치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또한 초중고생의 현장체험학습과 대도시 주부 등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계층들의 관심사인 농촌체험 활동 즉, 감자캐기, 고추따기, 고구마캐기, 순무체험 등 사계절 가능한 프로그램을 농업인들의 자생조직인 각 품목별 연구회 등에 연결시킴으로써 농경문화관이 그 역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곳 농경문화관은 수도권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맛있는 강화농산물에 대한 입체적인 홍보 등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 판촉장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향후 점증하는 직거래 수요에 적극 대응하며 농업인과 수도권 소비자간의 지속적인 도농교류를 실현하는 가교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더리미 미술관

더리미 미술관 사진

더리미 미술관은 사설 화랑으로부터 출발했다(갤러리 프란스·인, 카페프란스·인)미술관등록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상호를 더리미 미술관으로 바꾸게 되었다.김경민 관장이 한적한 시골에 작은 전시관을 꾸미겠다는 꿈은 그의 젊은 시설부터이다.

더리미 미술관에서는 단순히 전시만 하려는 전시관이 아니다.
작은 연극공연도, 마당놀이도, 작은 콘서트 글고 앞으로 문화센터까지 꿈꾸고 있다.
수도권 지역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을 비롯해서 인근의 주민, 청소년들에게 지역적 소외감을 해소하고 좀더 문화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화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예술, 문화사업에 더욱더 관심이 높하지고 있다.

유리 작품과 판화에 주력하는 것이 더리미 미술관의 특징이다.
유리작가 김기라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고 앞으로 유리 작품전을 다양한 기획으로펼쳐 보일 것이며, 지역예술과 전통예술도 간과하지 않고 펼쳐 보일 예정이다.

보유작품 : 유리작품 51점, 판화 42점, 일반자료(동양화, 서양화, 조각, 민화)97점, 가죽공예품

전원 미술관

전원 미술관 사진

1948년 강화에서 출생한 전원 유광상 화백은 평면화이면서도 입체적인 시각적 표현 양식이라든가 전통성과 현대 감각의 회화적 불교미술 등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묵 담채에서 채색,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처리하며 흐르는 듯한 번짐과 자연스러운 대상의 묘사, 대담한 화면의 분방함 속에서도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가 특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전통적인 수묵 담채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좋은 그림을 많이 보는 것이라 합니다. 좋은 그림감상은 강화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줄 것입니다.

- 수용능력 : 100명
- 출품작가 및 작품 : 1명 150점
- 전원미술관 홈페이지 : http://www.junwon-art-museum.com/